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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전시회

사울 레이터 전시회,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by SunFree 202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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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유명한 사람의 사진보다

빗방울이 맺힌 유리창이 더 흥미롭다

- 사울 레이터 -


 

"일상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울 레이터(Saul Leiter) 전시회의 부제를 달으라고 한다면, '일상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라고 짓고싶습니다. 겨울날 김이 서린듯한 흐릿한 물체, 도시 속 프레임 사이로 보이는 풍경. 우리가 늘 일상에서 보지만 지나치는 것들이죠.

 

 

 

 

"인생 대부분을 드러나지 않은 채 지냈기에 아주 만족했다.

드러나지 않는 것은 커다란 특권이다."

 

 

 사울 레이터는 60년 만에 알려졌습니다. 엄청나게 긴 무명 시절을 지내온 것이죠. 그는 금방 사라지는 일상의 평범하고 짧은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사울 레이터가 활동을 시작한 1950년대는 '매그넘 포토스'가 사진계를 이끌던 시기였습니다. 포토저널리즘의 대표 그룹으로 정치적 사건을 흑백필름으로 기록하는 것이 주류였죠.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목숨을 건 사진 한 장'이 세상을 바꾸는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 세계는 2차 대전을 끝낸지 몇 년 지나지 않았고, 한국에서는 6.25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세상에 가르침을 주기보단

세상을 그저 바라보고 싶었다."

 

 

 혼란 속에서도 일상 속에 아름다운 순간은 존재했고, 사울 레이터는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담았습니다. 고급 카메라도 아닌 보급형 카메라를 들고 뉴욕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죠.

 

 

 

 구두닦이의 구두입니다. 손님의 구두는 반짝이게 닦아주지만, 정작 자신의 구두는 낡고 헤져도 돌 볼 여유가 없습니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보고 빈부격차를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게 정치적으로 바라볼 필욘 없습니다. 자신의 일에 열심인 한 사람의 모습일 뿐입니다. 구두를 닦는 손님도 나름의 삶을 열심히 사는 사람일 것이구요.

 

 

 

 거리에서 꽃을 파는 남자의 모습입니다. 중절모를 푹 눌러쓰고, 단촐한 꽃 바구니에서 왠지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어떤 생각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거리에 나왔을지 궁금해집니다.

 

 

 

 사진보다 백색 여백이 훨씬 넓습니다. 여백이 넓어 작은 사진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주변 사진과의 간섭도 사라져서 사진 하나만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습니다.

 

 

 

 스니펫 (Snippets). 레이터는 인쇄된 사진을 명함 크기로 찢어 만든 사진조각들을 무척 좋아했고, 이를 '스니펫'이라 불렀습니다. 스니펫에는 가족이나 연인, 이웃 등 가까운 사람들의 모습을 주로 담았습니다. 수백 점에 달하는 스니펫들은 레이터를 둘러싼 따뜻한 일상을 보여줍니다.

 

 

 

 수영을 하며 싱긋 웃는 모습, 관능적인 누드, 귀여운 강아지의 반명함(?)사진까지 일상의 다양한 모습을 조각조각난 사진들로 펼쳐놓습니다.

 

 

 

 전시회장을 이동하는 계단에서는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길고양이들을 만나는 기분이 들어 재밌습니다.

 

 

 

 사울 레이터 전시회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입니다. 아마도 엄청 추운 날이었겠죠. 그렇지만 붉은 벽돌을 배경으로 하얀 눈이 내리는 모습이 왠지 포근합니다.

 

 

 얼리 컬러 (Early Color). 사울 레이터는 1940년대부터 컬러 필름을 사용했습니다. 컬러사진이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1970년대 보다 훨씬 앞선 것이죠. 당시 새로운 기술이었던 컬러 사진은 색상에 한계가 많았습니다. 때문에 동시대 평론가들은 이를 '진실을 왜곡한다'며 폄하했습니다. 하지만 레이터는 이에 동조하지 않고 계속해서 컬러 사진을 찍었습니다.

 

 

 

 작은 틈 사이로 보이는 일상입니다. 엿보는 듯한 묘한 느낌도 들고, 틈 사이로 보이는 모습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철골에 입혀진 에메랄드 색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같은 에메랄드 색이어도 반지위에 있으면 아름답다고 인지하지만, 철골에서는 왜 느끼지 못했을까요.

 

 

 

 남자와 여자의 모습입니다. 실제로는 둘이 아무런 사이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커튼봉이 둘을 갈라놓으면서 둘 사이의 갈등과 서사가 있어보입니다. 싸우고 서로 갈 길을 가는 모습이 생각난다고 할까요.

 

 

 

 컬러사진 영사기입니다. '찰카닥'하는 소리와 사진이 한 장씩 넘어갑니다. 어두운 방안에서 보는 일상의 사진과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입니다. 특히 영사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매력적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할 때 1년 동안 찍은 사진을 돌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울 레이터가 사진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잘 느껴지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두가 주목하고 집중하는 것보다는 놓치기 쉬운 일상의 모습을 담아온 인생이 느껴집니다.

 

 

 

 레이터라고 항상 일상만 담은 것은 아닙니다. 하퍼스 바자, 라이프 등 상업용 사진활동도 꾸준히 해왔습니다. 피크닉 전시회에서는 사울 레이터의 상업용 사진도 볼 수 있습니다.

 

 

 

 페인티드 누드 (Painted Nudes). 오래된 흑백사진들에 물감을 덧칠한 '페인티드 누드' 시리즈도 전시회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인생을 함께했던 친구, 연인들의 사적인 사진들에 컬러 물감을 더해 매력적인 작품으로 표현했습니다.

 

 

 

 집에 하나 즈음 두고싶은 컬러감입니다. 컬러 사진을 오래 찍어온 작가답게, 페인트로 컬러를 표현하는 것에도 거침없습니다.

 

 

 

 전시회의 마지막 무렵에서 만난 귀여운 강아지. 전체 사진은 사람과 함께 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무슨 신기한게 있는지 같은 곳을 바라보는 두 강아지가 귀여워서 강아지들만 확대해 찍어보았습니다.

 

 

 

 마지막 공간에는 우산이 하나 놓여있습니다. 사울 레이터가 가장 좋아했던 피사체였죠. 정말 수도없이 많이 찍어서 나중에는 현상 작업을 돕던 조수가 "우산은 이제 제발 그만 하세요!"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에 대한 사울 레이터의 대답이 재밌습니다. "나는 우산이 정말 좋아!"

 

 

 

 

"나는 염두에 둔 목적 없이

그저 세상을 바라본다."

 

 

 사울 레이터가 발견했던 뉴욕의 일상 속 아름다움은, 분명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있습니다. 서울이 될 수도 있고, 부산이 될 수도 있고, 하남이 될 수도 있죠. 한 번 즈음은 목적없이 그저 세상을 바라보아도 좋겠습니다. 흔해서 보이지 않았던 아름다운 순간이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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