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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을거리/책

죄와 벌 요약 (책리뷰)

by SunFree 2021.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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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한
삶의 무한한 원천이 간직되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작 『죄와 벌』. 소설은 잘생긴 법대생 '라스콜니코프'가 살인을 생각하며 시작합니다. 그는 매우 가난합니다. 방세는 몇 달이 밀려있고, 학비가 없어서 얼마전 휴학을 했습니다. 그의 여동생 '두냐'는 중년 변호사 '루쥔'과 약혼합니다. 야비하고 인색한 인간이지만, 가난한 어머니와 학업을 중단한 오빠를 위해서, 그녀는 자신을 희생하기로 합니다. 그래도 그의 상황은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그가 사는 동네의 극빈층의 삶은 더욱 처참합니다.



아무한테도,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디든 갈 데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형씨, 형씨,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불쌍히 여겨 줄 곳이
한 군데라도 있어야 한답니다.
...
형씨, 더 이상 갈 데가 아무데도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 이해하시겠습니까?

 술집에서 만난 극빈층 '마르멜라도프'. 그는 '카체리나'의 남편이자 '소냐'의 아버지 입니다. 마르멜라도프는 매일 술에 취해 살아갑니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조롱거리이며, 아내는 가난한 상황에 질려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해갑니다. 남편을 기생충으로 여기며 멸시하죠. 벗어날 수 없는 극빈한 상황속에서, 그의 딸 소냐는 가난 때문에 몸을 팔게됩니다.

 소냐는 몸을 팔기가 너무나도 수치스럽지만, 가정을 유지할 돈을 위해 희생합니다. 이 가정은 빈곤의 끝까지 와버린 거지요. 남편이자 아버지인 마르멜라도프는 갈 곳이 없습니다. 그는 계속 '갈 곳이 없다(장소)'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나를 받아줄 '사람'이 없는겁니다. 어쩌면, 나를 받아줄 '사람'이 없다는 말을 차마 못 해, 갈 곳이 없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의 하찮은 범죄가
수천 개의 선한 일로 무마될 수는 없을까?
하나의 생명을 희생시켜
수천 개의 생명을 구하는 거지


 동네에는 작은 전당포가 하나있는데, 과도한 이자를 받아 가난한 서민들의 돈을 착취하는 노파 '리자베타'가 운영합니다. 리자베타는 장애인 여동생을 노예처럼 부려먹는 파렴치한 늙은이 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가난도 싫고, 이런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젊고 선하고 똑똑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는데, 늙고 사악한 노파는 많은 돈을 움켜쥐고 있는거죠. 라스콜니코프는 리자베타를 도끼로 내리쳐 죽입니다. 그리고 우연한 목격자 리자베타의 장애인 여동생도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금품을 챙겨 허겁지겁 도망칩니다.



그저 이(蝨)를 죽였을 뿐이야

 라스콜니코프는 생각합니다. '그저 이(蝨, 벌레)를 죽였을 뿐이다', '예로부터 혁명적인 위인들은 모두 피를 본 범죄자였다, 나폴레옹이 그러했고, 마호메트가 그러했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말할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본성상 반드시 범죄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그는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자신의 가난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했고,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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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 있는 자는,
자신의 오류를 의식한다면,
괴로워하겠죠.
이게 그에겐 벌입니다.
징역과는 별개로.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죄가 들킬까봐 매일매일이 불안하고, 신경질적이고 폐인처럼 변해갑니다. 남들은 내 죄를 모르더라도 스스로 자유를 박탈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소설의 제목 '죄와 벌'은 이렇게 다가옵니다. 양심이 느끼게 하는  '죄의식',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벌'이다.



그는 자기를 응시하고 있는,
염려스럽다 못해 고뇌에 가까울 만큼 근심에 찬
그녀의 시선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사랑이 있었다.

 불안과 신경쇠약 속에 살던 라스콜니코프는 마음씨 착한 소냐에게 자신의 죄를 털어 놓습니다. 죄를 털어놓는 순간의 느낌은 마치 도끼로 노파의 머리를 내려찍었던 그 순간과 무섭도록 비슷합니다. '더 이상 단 한 순간도 허비해서는 안 된다.' 잠시라도 머뭇거렸다면, 살인이라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지 못 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잠시라도 머뭇거렸다면, 자신을 모두 내려놓고 죄를 고백하는 일을 못 했을 겁니다. 고백을 가능하게 한 건 소냐의 시선속에 담긴 사랑이었습니다.



어쩌자고, 어쩌자고 자기 자신에게
그런 짓을 저질렀어요!
...
지금 온 세상을 통틀어
당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
당신을 따라가겠어,
어디라도 따라가겠어.

 모든 사실을 알고난 소냐의 첫 마디는, 죄를 짓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어쩌자고 자기 자신에게 그런 짓을 저질렀느냐!' 죄를 짓는 건 타인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책감과 불안속에서 스스로를 망치게 됩니다. 소냐는 그를 사랑합니다. 살인을 했지만 불안속에 고통스러워 하는 그를 걱정합니다. 당신도 괴로워 하고 있지 않느냐고, 내가 당신 곁에 있겠노라고 맹세합니다.



혹시 십자가 갖고 있어?
고통받으러 갈 때, 그때 걸면 되니까.
나를 찾아오면 내가 걸어 줄 테니까
함께 기도하고 함께 가자.

 소냐는 그에게 십자가를 걸어줍니다. 그리고 함께 가자고 다독입니다. 그 이후 라스콜니코프는 자수하고 실형을 선고 받습니다. 그리고 시베리아 유형지로 이송됩니다. 소냐는 시베리아까지 그를 따라갑니다. 그는 유형지에서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소냐와 함께하는 새로운 삶에 눈을 뜹니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한
삶의 무한한 원천이 간직되어 있다

 죄를 지은 자는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 합니다. 죄를 용서해줄 누군가가 꼭 필요합니다. 소설 초반에 나왔던 '마르멜라도프'의 간절한 말이 오버랩 됩니다. '형씨, 형씨,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불쌍히 여겨 줄 곳이 한 군데라도 있어야 한답니다.' 소설의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합니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한, 삶의 무한한 원천이 간직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나는 누군가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을까요? 내 죄는 누구한테서 용서 받을 수 있을까요? 죄와 벌, 그리고 사랑과 용서까지 많은 생각이 드는 소설 『죄와 벌』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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