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물리량이기 보다는
결국 기억이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언제부턴가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어졌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하늘 보이는 집에서 살고 싶어졌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그 때에는 알 수 없었지만, 유현준 교수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생각이 정리되었습니다. 그것은 '기억'때문 이었습니다.
마당으로 나가면
천장 높이가 무한대가 된다
아파트의 층고가, 빌딩의 층고가 아무리 높다해도, 결국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마당으로 나가면 천장의 높이는 무한대가 됩니다. 대기권의 구름과 수 만 광년 떨어진 별도 내 소유가 됩니다. 무한대의 높이를 가진 사적인 공간이 마당인 것입니다. 마당보다 매력적인 공간은 아파트의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30평 짜리 주택이
100평짜리 주상복합보다
넓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이유는 마당이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이다
주상복합에 아무리 넓은 거실이 있다고 해도
거실의 인테리어가 매일 시시각각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당은 때로는 비도오고,
햇살도 비치고, 눈이 내리기도 하고,
낙엽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 밖에도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이벤트는 다양하다.
고추를 말리기도하고, 바비큐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이벤트와 날씨가
마당의 얼굴을 항상 바꿔준다.
마치 마당은 매일매일 벽지와 가구가 바뀌는
거실이라고나 할까?
마당과 거실을 비교해보면 차이는 더 명확합니다. 마당에서의 다채로운 이벤트는 날씨와 사람이 만들어 갑니다.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들으며 파전에 막걸리를 마실 수 있고, 해가 나면 고추를 말리기도 빨래를 널기도 합니다. 눈이 내리면 눈사람을 만들어 둘 수도 있죠.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날이면 바비큐 파티와 조개구이를 해먹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추억의 축적이 마당을 실제보다 더 큰 공간으로 만들어 줍니다.
지난 50년간 미국 중산층 집의 크기는
두 배 가까이 커졌다고 한다.
50년간 사람의 몸이 커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 구성원의 수는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집은 이렇게 계속 커져 갔을까?
가만히 살펴보면
커져버린 집의 공간은
물건으로 채워져 있다.
마당처럼 다채로운 경험이 펼쳐지는 외부공간을 잃어버리니, 사람들은 점점 더 큰 공간을 찾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넓어진 공간은 물건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말이죠. TV는 점점 커지고, 건조기도 필수가전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마당에서 노는 시간이 있다면, TV를 보는 시간은 줄어들거고, 빨래도 마당에서 날이 좋을때 말리면 될 텐데 말입니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집 안에 화분과 그림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꽃이 피고, 감나무가 열리고, 낙엽이 지고, 눈이 쌓이던 마당은, 그 자체가 커다란 화분이자 그림이었습니다.
공간은 실질적인 물리량이라기 보다는
결국 기억이다.
우리가 몇 년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어떠한 추억들이 있었느냐가
우리인생을 결정하는 것이다.
결국 넓은 평수보다는, 많은 추억이 중요합니다. 더 많은 추억을 남기는 인생이 더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마당이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우리 일상속에서 더 많은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죠. 빌라라면 옥상이나 테라스를 활용 할 수도 있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길로 걸어갈 수도 있고, 그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카페에 들어갈 볼 수도 있습니다. 식탁위 둘 꽃과 꽃병을 골라도 좋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옥상에서 커피와 맥주를 한 잔 하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옥상에 둘 작은 테이블과 의자도 구매했구요. 여러분도 어떤 방법이든 매일매일 행복한 이벤트가 쌓여가는 하루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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