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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을거리/책

행복의 기원 요약 (책리뷰)

by SunFree 2021.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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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의 기원』은 뻔한 행복론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동안 행복은 철학적으로 접근 되어왔습니다. '너는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 명상하라, 남과 비교하지마라, 욕심을 비워라' 등 마음가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죠. 하지만 『행복의 기원』에서는 지극히 과학적으로 행복을 탐구합니다. 뇌를 연구함으로써 말이죠. 그리고 말합니다. '행복은 단순하다. 사람과 음식이다.'


생명체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호모사피엔스의 존재 이유도
벌, 선인장, 꽃게와 마찬가지로 생존이다.
당연한 얘기다.
...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기존의 생각이 완전 허물어졌습니다. 모든 생명체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는 결국 '생존'입니다. 이 사실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우리는 왜 밥을 먹고, 공부하고, 일을 하고,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섹스를 하고, 아이를 낳을까요? 삶에서 단 하나의 목표만 남기라고하면, 결국 생존입니다. 내가 생존하고, 내 후대에 DNA를 남기는 것이 뇌속에 깊이 박힌 본능입니다. 그럼 행복은 생존에 어떤 역할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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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기막힌 설계를 했다.
인간은 쾌감을 얻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쉽게 생각해보자.
인간이 음식을 먹을 때, 데이트를 할 때,
얼어붙은 손을 녹일 때,
'아 좋아, 행복해'라는 느낌을
경험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또다시 사냥을 나가고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생존에 필요한 활동을 할 때 '행복하다'라고 느낍니다. 음식을 먹으면 행복하고, 데이트를 할 때 행복하고, 추운곳에 있다가 따뜻한 곳으로 가면 행복합니다.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면 행복하고, 승진을 하면 행복하고, 더 좋은 학교에 입학하면 행복합니다. 생존에 직접적이진 않더라도, 사회적 동물로 생존하는데 유리한 조건들을 갖추면 행복을 느끼는겁니다. 행복은 뇌속에 박힌 일종의 '생존 지침서'인 셈입니다.


먼 옛날 어떤 남자가
고기나 여자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나무의 나이테를 셀 때만
묘한 즐거움을 느꼈다고 치자.
눈만 뜨면 밥도 안 먹고 나가서 나무를 자른다.
그는 성인기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우리는 이런 기이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자들의 후손이 아니다.
호모사피엔스 중 일부만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는데,
그들은 목숨 걸고 사냥을 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짝짓기에 힘쓴 자들이다.
무엇을 위해?
삶의 의미를 찾아서?
자아성취?
아니다.
고기를 씹을 때, 이성과 살이 닿을 때,
한마디로 느낌이 완전 '굿'이었기 때문이다.

 책에는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나무만 좋아하는 사람'을 예로 듭니다. 생존외에는 다른 가치가 없던 선사시대에 '나무만 좋아하는 사람'은 생존하지 못 했을겁니다. 생존에 필수적인 사냥기술이 부족했을거고, 그런 남자를 여자들이 좋아했을리 없습니다. 우선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3백만년 동안 음식과 이성을 좋아하는 유전자를 물려받았습니다. 생존 욕망이 강한 (=음식과 이성에서 행복을 강하게 느끼는) 성향이 자연적 선택으로 강화되어 온 것이죠.


기대만큼의 행복결실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수십 년 연구의 결론이고,
이 현상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적응'이라는 녀석이 지목되었다.

그러면 우리가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은
왜 그토록 빨리 소멸될까?
적응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일어나야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무리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어도,
살기 위해서는 내일 또 사냥을 해야한다.
사냥에 대한 의욕이 다시 생기기 위해서는
오늘 고기를 씹으며 느낌 쾌감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행복의 조건이 충족 되어도,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행복의 감정이 소멸됩니다. 바로 '적응'때문인데, 적응이라는 리셋이 없으면 생존 행동을 멈추기 때문입니다. 오늘 맛있는 음식을 먹은 행복감이 계속 지속되면, 그래서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면 몇 일을 못가 굶어 죽을겁니다. 오늘 좋은 학교에 입학한 행복감이 계속 지속되면, 추가로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백수신세가 될겁니다. 그래서 뇌는 행복감이 오래가도록 두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크던 작던 행복은 소멸됩니다. 시간은 기쁜일도 슬픈 일도 생각보다 빨리 지워버리죠. 때문에 작은 행복을 자주 느끼는 것이 행복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큰 행복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사람만큼
'자극적인 자극'도 없다.
...
뇌는 우리의 행복에 일말의 관심도 없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도록 하기위해
뇌는 설계되었다.
그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뇌는 사람이라는 생존 필수품과
대화하고 손잡고 사랑할 때
쾌감이라는 전구를 켜도록 설계된 것이다.

 책에서의 말처럼 '사람이 가장 자극적'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자극은 매우 강렬합니다. 배고픔도 잊게 할 정도죠.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이 주는 자극도 매우 강렬합니다. 입맛이 없어질 정도로 말이죠. 생존의 근본인 음식 생각이 나지 않을만큼 자극적인게, 사람말고 또 있을까요. 우리는 왜 이렇게 사람에게 민감하게 반응할까요? 그건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생존에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압도적으로 생존률이 높습니다. 여럿이 함께 사냥하면 인간보다 강한 황소를 사냥할 수도 있고, 내가 다쳐서 움직이지 못해도, 누군가 음식을 나눠주면 회복하고 다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서로가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사회적 DNA 뇌속에 깊이 박혀있죠.

 이성문제로 가면 더 결정적입니다. 나는 언젠가 죽습니다. 하지만 나의 DNA는 계속해서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자녀를 낳음으로써 말이죠. 내가 다른 이성의 마음에 들어야 내 DNA를 후세에게 넘겨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은 나의 생존에 절대적입니다. 뇌는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반응하는 것이죠.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은 대단한게 없습니다. 우리의 뇌는 좋아하는 사람과 음식을 먹으면 가장 행복해하고 즐거워 합니다. 유치한 행복이라고 폄하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철저히 실용적으로 설계되었을 뿐입니다. 그 뇌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구요.


출처 : adrienn 님의 사진, Pexels
출처 : Anastasia Shuraeva 님의 사진, Pexels
출처 : edward eyer 님의 사진, Pexels
출처 : RODNAE Productions 님의 사진, Pexels
출처 : Naver 영화, 가족의 나라 스틸컷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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